1218년, 몽골 제국이 서하를 정복하고 금나라를 넘보던 시기에 발생한 호레즘 왕국과의 갈등을 다룹니다. 오트라르 성주가 칭기스칸의 사신을 처형하면서 시작된 복수의 전쟁은 몽골 군대의 결정적인 승리로 이어집니다. 수부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은 조지아와 러시아에서의 전투에서 강력한 전술을 펼치며, 러시아 군대를 전멸시키고 잔혹한 복수를 감행합니다. 결국, 수부타이는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앙아시아에서 몽골 제국의 지배력을 확고히 하게 됩니다. 이 포스팅은 이 역사적 사건들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1218년, 몽골 제국의 확장
1218년, 몽골 제국은 서하를 정복하고 금나라를 넘보며 용토를 확장하는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당시 중앙아시아의 호레즘 왕국은 전쟁을 피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호레즘은 현재의 우즈베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대에 걸쳐 있었으며, 실크로드의 중심지에 위치해 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칭기스탄의 분노한 오트라르 사건
몽골의 칭기스칸은 오트라르라는 도시에서 잠시 쉬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호레즘 왕국의 군주인 무함마드 2세의 친척이었던 오트라르 성주가 칭기스칸이 보낸 사신과 상인들을 첩자로 의심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성주는 상인들이 가져온 물건을 모두 빼앗고 450명의 상인을 처형해버리는 끔찍한 결정을 내립니다.
이 소식을 들은 칭기스칸은 매우 분노하게 되지만, 일단 참기로 합니다. 그는 이슬람 신자 사신 한 명과 몽골 사람 두 명을 보내 무함마드에게 "왜 죽였냐"는 질문을 전달하고, 오트라르 성주를 처형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 보냅니다. 하지만 무함마드는 요청을 거절하고, 칭기스칸이 보낸 이슬람 사신을 죽이며 몽골 사신 두 명의 수염을 잘라버립니다. 이는 남자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기 때문에 큰 도발로 간주됩니다.
몽골 군대의 전진
결국 칭기스칸은 화가 나 군대를 징집하고, 수부타이를 포함하여 전쟁에 나서게 됩니다. 이때 금나라와 전쟁 중이었지만, 복수심은 강했습니다. 몽골 군대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사마르칸트로 향해 진군합니다. 칭기스칸의 장남인 주치는 후방을 차단하고, 다른 아들은 산맥을 넘어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진격합니다.
몽골 군대는 다섯 달의 포위 끝에 오트라르 성을 무너뜨리고 성안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성주인 오트라르 성주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몽골 군대는 그를 바로 죽이지 않고 고문을 시작합니다. 성주에게 은을 녹여 그의 구멍에 부어넣는 방식으로 고통을 가합니다. 이후 몽골 군대는 사마르칸트를 포위하고, 호레즘 왕국의 군대를 끌어내어 약 5만 명을 죽입니다.
우르겐치의 비극
호레즘 왕국의 우르겐치에서도 몽골 군대는 끔찍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당시 호레즘 왕국의 군주인 무함마드 2세는 이미 도망쳐 있었고, 몽골 군대는 그를 추적합니다. 수부타이는 무함마드 2세를 추적하기 위해 칭기스칸에게 3년이라는 시간을 허락받고 주변 정찰을 하며 해안가에서 진을 치고 무함마드를 찾습니다.
수부타이는 1221년에 서쪽으로 향하며 조지아에 도달합니다. 그곳에서 조지아 군대를 물리치고, 1222년 카카 산맥을 넘어 새로운 땅으로 들어갑니다. 이후 러시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의 여러 공국들과 연합한 러시아 군대가 수부타이 군대를 공격합니다. 수부타이는 러시아 지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칼카강에서 러시아 군대와 전투를 시작합니다.
칼카강 전투의 승리
1223년, 수부타이는 칼카강에서 전투 태세를 갖추고 화살 공세를 퍼붓습니다. 후퇴하는 러시아군의 대열이 흐트러지자, 중무장 기병을 투입하여 러시아 군대의 병력을 쪼개버립니다. 이 전투에서 러시아 군대는 약 4만 명이 전멸하고, 도망친 군대도 250km 정도 쫓아가서 처치됩니다.
몽골군은 포로가 된 귀족들을 반지 위에 눕혀두고 그 위에서 잔치를 벌이며, 반지 아래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귀족들이 질식해 죽어가는 모습을 즐깁니다. 이렇게 몽골군은 잔인한 방식으로 러시아 귀족들의 씨를 말리게 됩니다.
무함마드 2세의 도망과 수부타이의 추적
무함마드 2세는 카스피해의 외딴 섬에 숨어 있었고, 수부타이는 그를 추적하며 정찰과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1225년, 수부타이는 몽골로 돌아가고, 칭기스칸은 122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부타이는 다시 전쟁터로 보내지게 되었고, 우구데이 칸의 명령으로 1231년부터 금나라 정벌에 나서게 됩니다.
금나라의 멸망
결국 수부타이는 1234년에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 카이펑을 함락합니다. 이로써 몽골 제국은 중앙아시아에서의 지배력을 확고히 하였으며, 칭기스칸과 수부타이의 전쟁은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로 기억됩니다. 이 사건은 몽골 제국의 팽창과 함께 중앙아시아와 유럽 간의 역사적 교류가 시작된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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